나는 비문증이 심하다. 난시도 심하고, 난시중에서도 양안의 난시 축이 거의 90도 정도 기울어져 있어서 자주 어지럼증을 느낀다. 게다가 근시의 시력도 차이가 많이나서 늘상 눈이 피곤하고 특히 컴퓨터처럼 밝은 화면을 보면 그림자가 많이 남는다. 색도 자주 바뀐다.
내가 시력이 이렇게 문제가 있다는걸 깨달은건 초등학교1학년때였다. 지금처럼 영유아 건강검진이 시행되던때도 아니고 초등학교 들어가서야 신체 검진을 했던 시기였다. 난 모든 사람이 다 왼쪽눈이 안좋은줄 알았다. 지독한 오른손 잡이였던 나는 당연히 눈도 오른쪽이 좋은 건줄 알았다. 한쪽눈을 감고 고개를 까딱거리면 세상이 휘청거려보인다. 난시 덕분이다. 두통도 자주 온다. 특히, 눈이 건조해지는 날씨, 렌즈를 낀날, 눈 주변에 실리콘이 잔쯕 함유된 화장품을 바르는 날엔 더더욱 그렇다.
진료를 하면서 개개인이 느끼는 통각, 그것을 유발하는 원인이 얼마나 다른지 깨닫게 된다. 더욱 신기한건, 사람들은 자신이 느끼는 감각과 그에 수반하는 감정, 이런것들을 "표준"이라는 틀을 통해 억제하고 통제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피로를 느끼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다.
"저는 하는 일도 없는데 왜 이렇게 피곤한지 모르겠어요"
혹은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이렇게 말한다.
" 남들도 이정도는 스트레스 받으면서 살지 않나요. 근데 왜 나만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극복"하려고 오랫동안 참고 병원에 온다. 그 피로와 감각들, 감정들이 나만의 것이고 오로지 나만의 것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이해하는데 왜 그렇게 오래걸리는지 모르겠다.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을 아프게 하고 한번도 겪어본적이 없는 가장 흔한 감기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은 열이 펄펄 끓고 몸살이 심해도 잘 견디고 약 없이 2-3일이면 거뜬히 일어난다. 또 어떤 사람은 목이 약간 답답하거나 체온이 약간만 올라가도 힘이 들어서 금세 무기력해진다.
소아과 의사인 내게 있어서 가장 흔한 일은, 아이가 열감기를 겪을때 이다. 학령기 전의 아이들은 아직 경험하지 않은 바이러스가 많은 탓에 감기에 자주 걸린다. 그렇다고 모든 아이들이 감기에 항상 걸리는 것도 아니고, 어떤 아이들은 감기에 걸려도 별일 없이 지나간다.
신경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다른 이야기를 오래한 것 같다. 눈치 챈 이들이 있겠지만, 신경다양성 역시 이와 같은 축에서 볼 수 있다. 상황에 대한 인지, 감각, 이해, 그것에 대한 심리적, 신체적 반응이 모두 다를진데, 이것을 총괄하는 신경이야 말로 가장 다양한 것중 하나가 아닐수 없다.
신경 다양성을 이야기할때 주로 언급되는 범주의 컨디션은 자폐증, ADHD, 난독증, 기타 언어장애를 포함한다.
가장 흔히 언급하는 자폐증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자폐증은 2013년 DSM-5로 개정되면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로 분류가 바뀌었다. 이전에 각 질병의 범주를 나누었던것에 반해 자폐증의 기본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외 동반된 다른 질환이나 상태가 있는지를 더하여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자폐증이 점점 더 증가하는 이유에 대해서 ASD로 바뀌면서 진단기준이 유연해졌고, 넓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은 진단이 확인 되었을때 사회적으로 줄수 있는 혜택이 많기 때문이고 덕분에 실제로 많은 아이들이 교육과 재활에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최근엔 신경과학의 발달로 자폐증과 기타 신경질환들의 병리에 대해 많은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이전 과학자들은 상상할 수도 없을만큼의 데이타와 가설을 입증하는 결과들이 쏟아지고 있다. 적어도 내가 졸업할때까지 들어본적도 없는 이론들이 나오고 실제 환자에게 적용되고 있는 세상이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다. 신경 염증이 발생하고 채 발달하지 못한 뇌에 염증이 지속되고 그래서 어느정도 발달 단계를 지나고 나면 더이상 특정 기능이 악화되거나, 그와 동시에 강화되어 어떤 범주의 상태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가 자폐증이라고 부른다.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우울증이나 만성 염증질환이 지속되는 사람의 뇌를 살펴보면 자폐와 비슷한 신경 염증반응을 보인다. 파킨슨이나 알츠하이머같은 퇴행성질환들도 마찬가지 결과를 가져온다. 기존의 과학은 신경염증이 있다면 증상이 모두 같아야한다. 물론 자세히 살펴보면 더 다르겠지만 적어도 자폐증과 파킨슨,알츠하이머는 병리적으로도 비슷하다는 연구결과들이 많다.
특정 병리가 같은 증상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은 지나치게 일부일수도 있다. 간질을 앓고 있는 사람이 뇌파에서 모두 경기파가 관찰되는 것이 아니고, 경기파가 있는 사람들이 모두 간질을 앓는 것은 아니다.
정상이라는 환상이 있다. 현대의학과 과학에서 정상 범주에 드는 것은 정규분포내의 95%안에 드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키, 몸무게, 지능 등등 인간이 표준화할수 있는 거의 모든 사회현상을 정상과 비정상의 범주안에 넣었다. 94.9999%까지는 정상이고 95.1111%부터는 비정상이라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이제 사람 이야기를 해보자.
아스퍼거로 유명한 사람들이 몇 있다. 세계적인 환경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 그녀의 용감하고 결단적인 행보는 결코 그녀의 컨디션과 관계없다고 말할 수 없다. 누가봐도 아스퍼거 같은 일론머스크, 단순한 geek 괴짜 이상으로 그의 행동과 말투는 어딘가 이상하다. 템플 그란딘 교수도 스스로 자폐증 환자이면서, 학문적 업적을 새운 사람도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자폐증, 아스퍼거증후군, 혹은 발달장애 환자에 대한 이미지는, 항상 도움이 필요하고 사회적, 학문적 업적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것이라는 것이다. 어떤 그림이든 그것은 우리의 두려움이 만든 부정적인 것일 가능성이 높다. 자폐증이든, ADHD든, 아스퍼거든 가정도 꾸리고 잘 살던 성인들이 진단받는 경우가 많은 것을 그 때문이다. 실제로 이 컨디션들은 사회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다양성이라는 단어에 무지개를 먼저 떠올리는 것은 색과 색 사이에 수많은 색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 사이에 숨어있는 색들은 이름을 미쳐 가지고 있지 않을수도 있다. 성인이 되어서 진단될정도로 사회, 의사소통 기능에 문제가 없고, 지능에도 문제가 없는 신경다양인들 Neurodivergents과 정상인들 neurotypicals사이에도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더 다른 사람들이 있을지 모를일이다.
신경 다양성이란 다양한 표정, 언어, 인식의 방식, 생활의 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정상"이라는 범주에 맞추려고 재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과 동시에 그들에게 맞는 교육과 자극들을 새롭게 열어주어야한다는 취지의 개념이다. 이 개념이 의사인 나에게 시사하는 바는 실로 크다. 마치 새로운 세상이 열린것과 같다.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거나, 이상한 표정을 짓는 환자에게 "고칠 병"을 가진사람이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평범한 아이들"과 같지 않아서 눈물짓는 아이들에게 아이들의 평범하지 않음을 설명하면서 무조건 슬퍼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이 이야기가 더 전파되기 위해선 사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사실은 막대한 돈이 필요하다. 십수명의 아이들을 상자같은 교실에 가둬놓고 일괄적인 교육을 하는 대신에, 개개인에 맞춰 설명해주고 다른 사고 실험을 할수 있도록 해주려면 더 많은 상상력과, 더 많은 인력과,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 사회에선 신경다양성을 말하기 전에, 이미 그외의 다양한 것들에 대해서도 열린마음으로 논할 필요가 있기에 갈 길이 멀어보인다.
적어도 난 이 공부를 하면서, 그리고 같이 살아가면서,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이 아이들을 돕고싶다. "정상화 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닌, 그들이 더 행복할 수 있도록,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누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내가 할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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