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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5.07 약한 고리가 되지 않기 위해
posted by Dr.Arale 2020. 5. 7. 14:23

나 자신부터 시작해서 흔히들 내 몸의 건강이 다른이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해온 시대를 살아왔다. 

아마도 예방접종이 보편화되고, 그래서 대부분의 건강 문제가 전염병이 아니라 만성 질환이나 암과 같은 질병이 되었을때, 내 몸하나쯤이야 어떻게 되는게 해가 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시간이 꽤나 오래다. 

그래 후에 이 환자 덕에 찾아본 각종 항공 규약에는 다른 사람에게 잠정적 피해가 될수 있는 승객에는 약물중독, 사용, 음주 같은것도 있지만, 전염병도 있고, 보기에 심한 피부병도 있다. 

그래도 최근 그 볼드모트같은 그 말못할 질병이 돌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내 몸이 다른사람에겐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그 아이디어가 어느정도 이해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만, 그건 내 큰 착각이었다.

30대 젊은 남성이다. 한달전부터 가래가 끓었다고 한다. 뭐 그나마도 지금은 믿지 못하겠지만..

다른 증상은 없었다. 본인도 그렇게 말했다. 열도 없고, 가래도 많지 않고, 기침도 심하지 않고, 다만 오래되서 걱정되서 와보았노라고. 

다른 환자들과 마찬가지로 작금에 상황에 비추어 가슴사진을 권유하였고 찍었다. 

Lt hilar consolidation with cavitation. 지금보면 결핵같아보인다만...

방금 엑스레이실에서 도착한 가슴사진엔 전혀 기대하지 못한 사진이 실려있다. 왼쪽 폐문에 종괴가 있다. 주변으로 히끄무레한 음영이 비추는걸로 보아 암이나 다른 문제라기 보다는 증상과 겹쳐 보았을땐 증상이 심하지 않은 비정형 폐렴일 가능성이 많다. 그럼 바로 그것? 말 못할 바로 그 바이러스 인가?라고 하기엔 증상도 오래되었고 주변사람들도 아무도 증상이 없다. 

내가 생각하기에 좀 강려크 한 항생제를 사용하고 5일뒤에 사진을 찍었다. 무쇠다. 아무 변화가 없다. 심지어 비정형폐렴 환자들이 흔히 겪는, 항생제를 먹으면 오히려 더 하는 기침도 없다. 

그럼 정맥 주사를 3일간 맞은뒤 비교해보고 아니면 씨티를 찍자고 했다. 3일간 세프트리악손을 매일 1번씩 썼다. 물론 병행하는 먹는 항생제도 쎈거다. 그러니까 다방면으로 쐈다. 이 폐렴균 없어져 버려!! 에네르기를 모아서 쏘았다. 주사치료 3일째, 궁금함을 참지못해 2일만에 다시 사진을 찍었다. 끄덕없다. 이건 결핵인가봐... (는 첫날부터 생각했던 것이었다. 젊은 사람이 아무 증상도 없이 결핵이 온다니..? 걱정 많은 내 머리를 쥐어밖으며 생각을 날려보냈던 날이었다.) 

 

씨티를 찍으러 가시라고 했다. 아니라고 한다. 받은 먹는약을 다 먹은뒤에 그때 찍어보고 결정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이미 1주일 이상 많은 약을 사용했다. 하지만 병변은 그대로다. 물론 증상도 없다.

그 다음주가 되었다. 약속한날짜에 다시 사진을 찍는다. 아니 이렇게 사진이 안변할수도 있나 싶을정도로 변화가 없다. 그의 증상에도 변화가 없다. 열이난다던가, 가래가 더 끓는다거나, 기침이 심해진다거나 그런것도 없다. 다만 등이 조금 결린다고했다. 

동네 큰병원에 소견서를 써 보냈다. CT chest, TB quantiferon

하루가 지났다. 내일이면 연휴다. 들떠 있을무렵, 그가 씨티결과지와 씨디를 가지고 왔다.

결과지엔 pulmonary tubeculosis on left lower lobe with excavation. 이라고 써있다.

아 그 아래 rasmussen aneurysm에 대한 언급도 있다. 

 

Rasmussen aneurysm라고 한다. 출처: https://www.archbronconeumol.org

 

3차병원에 연락을 했다. "아니 당신 지금 이 사람 활동성 결핵이라고 쓴거에요?" 

그 할아버지는 프랑스 억양의 영어로 말한다. "응 그리고 애뉴리즘은 주사를 하지 않았... (이건 뭐라는건지 정말 모르겠다." 뭐 암튼 TB quantiferon검사를 안한건 자기는 검사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그랬다고 하는데.. 그러니까, 여기는 의뢰받은 병원에서 의뢰한 병원에서 하라는것만 해주는데, 정말 CT 만 찍고 보낸거다. 결과도 설명 안해주고말야.

암튼, 그 청년은 나에게 결과를 들었다. 작은 우리병원은 동요했다. 임신 4개월의 직원이 울상이다. 

나는 서둘러 결핵약을 구할수 있는지 알아봤다. 구할수는 있는데, 거래처에 지금 없고, 언제 입고할수 있을지도 장담 못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 2시간 후면 4일간의 연휴 시작이거든,그러니까 더이상 일시키지마라고 직원의 눈이 말했다. 

"혹시 최근에 살빠지거나 그러진 않으셨어요?" 

2주간 적어도 7번을 만난 환자가 처음으로 말했다. "저 당뇨에요" 

blood gulcose 520, UA ketone 80, glucose 1000 :uncontrolled DM 

2차적 멘붕이가 왔다. 그는 지금 조절되지 않은 당뇨에 약간의 acidosis가 오고있다. 

아니, 2주전에 처방해놓은 가래 배양검사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니, (검체 수집 병을 주었는데, 환자가 검체를 안주었다고함) 그때 검사만 했어도,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교과서적으로야 지금 mild DKA with DM type 2라면, hydration 하고 regular insulin 주면서 봐야하지만, 이사람과 폐쇄된 공간에 오래 있으면 안된다. 

집으로 일단 보냈다. 그리고 구할수 있는 lantus를 집으로 보내주고 오늘부터 주사하라고 했다.

....그렇게 나는 악몽의 연휴와 1주일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건 1편이다. 난 지금 멘붕이다. 

당신 몸하나 건사하는일이 뭐 대단한 일일까 싶지만, 만약, 당신이 당뇨가 없었다면, 이 타지에서 그 결핵같은거 안걸렸을텐데... 

이제 당신 주변사람들은 어쩌나요....

전 멘탈리 약한 의사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