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오래전 일이라 정확하게 병명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는 뻥이고 사실 그는 스티븐존슨이었다.
젊은 남자였고 보통 중환이 잘 없는 피부과/성형외과 병동의 외딴 1인실에 그가 누워있었다.
우린 그저 기계처럼 하루 3번 처방된 드레싱을 하기위해 방문할 뿐, 그를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는 이것이 어떤 것인지 처음엔 관심조차 가지지 못했다.
커다란 1인실 병실 창문 옆으로 나란히 놓인 커다란 침대. 그와 창문사이엔 침대인듯 소파인듯한 보호자용 그것이 놓여있고.
거기엔 다시 어쩔줄 모르는 그녀가 앉아있다.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 당직복을 입고 잔뜩 소독용 거즈와 드레싱 물품을 챙겨 방에 노크를 하고 들어갔다.
그래도 첫 일주일 쯤은 말도 하고, 상처도 제법 사람의 상처 같았다.
그렇게 일주가 채 못 지나고 나니, 그의 온 몸은 성한곳이 하나도 없었다.
늘 그림처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글을 쓰며 떠올려보니 그저 안타까운 모습이었다는 것외에 기억이 나질 않는다.
웻 드레싱 (wet dressing)을 했다. 젖은 거즈를 몸에 덮어놓으면 한두개씩 떨어졌다.
그의 신음소리가 들린다. 그녀의 안타까워하는 음성이 기억난다.
추운 것인지 아픈것인지 보고 있는 내내 벌벌 떨고있다.
그리고, 그는 진통제를 맞았을까?
점점 정상적인 피부조직이 줄어들고, 남아있는 피부는 수포로 뒤덮이고, 벗겨지고, 진무른다.
그의 몸통을 덮는 텐트가 생겼다. 더이상 이불도 덮지 못한다. 몸을 뒤집거나 움직이지도 못한다.
그리고 우리는 더이상 드레싱 콜을 받지 않았다.
꽤나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가끔 심한 피부염 환자를 보면 떠오른다.
더이상 돌이킬수 없었을때 고통을 줄여주기위해 중환자실로 옮기고, 기관삽관을 하고, 면역억제제를 정말 막, 엄청 쓰고,진통제도 고통을 줄일수 있을만큼 주었다면 어땠을까..
그가 그 방을 걸어 나왔을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그 가여운 부부가 아무것도 못하고 벌벌 떨며 복도 끝방에서 기다리는 그 시간에
다른 대안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았다.
물론, 그때 주치의들이 최선을 다했겠지만, 그리고 어떤 사정이 있었겠지만, 우리가 더이상 콜을 받지 않은게 중환자실에서 잘 나아서 퇴원했기 떄문이라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물론,우린 모든 중환자실을 알고 있었고, 중환자실엔 그런환자는 없었다)
어제 학교 다녀와서 펑펑 울었다고, 그래서 댁으로 드레싱을 하러 갔던 소년을 보고 돌아오는길, 내내 그 생각에 잠겼다.
피부라는 장기가,
우리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이 고마운 장기가,
어린 소년의 그것이 부디 잘 견디고 버티어 건강해지기를
추가 > 그리고 내가 담당은 아니었지만, 비슷한 병으로 생을 마감했던 신생아도 하루에 다섯번씩 드레싱하고 먹지도 못하고 울고만 있던 그 작은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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