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우리를 황폐하게 만든다. 전쟁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주는 공포는 아주 단순한 것이다. 우리가 이룬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나의 존엄성은 무너지고 나를 이루고 있던 모든 세계를 지탱하던 아름다운 것들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코로나는 우리에게 그런 것이었다. 인류는 3년간 너무 많은 것을 보았다. 나는 베트남에 있었다. 호치민에 있었다. 호치민은 아름다운 도시였다. 역동적이고 바쁘고 사람들이 넘쳐났다. 어느날 일어나보니, 모두가 모두에게 적이 되어있었다. 그것은 전쟁보다 더 슬픈 일이었다. 아는 사람을 하나 건너면 코로나에 걸려 희생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넘쳐났다. 호치민은 베트남에서 가장 큰 도시중 하나였는데, 예외가 아니었다. 너무 슬펐다. 가장 큰 병원 앞에서 사람이 죽어갔다. 숨을 헐떡이던 노모를 그저 바라만 보아야했던 아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더한 이야기도 있었다. 스페인에서 노인들이 머무는 양로원에 노인들을 제외하고 다른 스텝들이 모두 피했다. 걷잡을수 없이 퍼지는 코로나를 피해 젊은 스텝들이 자리를 피한 것이다. 그 도시를 일으키고 자녀들을 키웠던 부모들은 그 병마속에서 죽어갔다. 존엄같은 건 없었다.
해외에서 겪은 코로나 19의 일련의 사태는 개인에게 엄청난 불안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고국은 어느새 지구에서 가장 방역을 잘 하는 나라가 되어있었다. 그저 6시간 남짓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던 고국은 지상 천국이었다. 가장 합리적으로 병을 대하고 있었다. 죽어가는 환자에게도 그나마 존엄이 남아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그때 나는 호치민 시내에서 어느 동의 누군가가 숨을 쉬기 힘들어하고, 어느 병원으로 후송되었고, 어떤 대사관 직원이 그 일에 어떤 일을 하였고, 이후 사망하셨다는 소식을 듣는 그런 날들을 보내고 있을때였다.
한없이 무력했다. 전쟁이라는 것이 이렇게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까. 최선을 다해 이것저것을 해보았지만,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호치민 시내에 갇힌 한인들을 위해 약을 내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검사키트를 몰래(?) 들여오던 날, 그 날의 떨림을 잊을 수 없다.
건강 상의 이유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고국의 정취, 그것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고국에 돌아온 안도감이 아니었다. 의사로서, 지구상에서 가장 합리적으로 역병에 대처하는 지역에 도착한 안도감이었다. 그랬다. 내가 도책하였던 2021년 9월의 한국은 그러했다. 시내에서 30분이나 떨어진 마을까지 시청 직원이 도착해 보급품을 주고, 감염 폐기물을 위한 봉투도 주는 곳이었다.
나에게 나의 고국은 그런 곳이었다.
그래 고국은, 나라는, 국민을 안심하게 해야한다.
그 시간동안 아이들이 망가졌다. 언어를 배우고 뛰어놀며 사람들과 상호작용해야하는 아이들이 그 시간을 빼앗겼다. 그 아이들의 시간은 매우 크리티컬하다. 한번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서른살인 당신에게 이 봄에 못한 것이 서른 한살에 할 수 있는 것, 그런것이 아니다. 두돌의 봄에 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시간에서 계속 뒤쳐지는 결과를 낳는것이다. 한국은 아이를 낳기 어려운 곳이다.
나는 매일 엄마들을 본다. 엄마들은 너무 불쌍하다. 아이를 낳는순간부터 딱하다. 아직 부른배가 꺼지지도 않은채,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퉁퉁부은 얼굴로 내게 온다. 자신은 잘 자지도 먹지도 못하면서, 그 작은아이가 먹는 것에 대해 싸는 것에 대해 나에게 묻는다. 그리고 그 아이가 어디가 아프다면, 부모는 다시 종종대며 이곳저곳을 다녀야한다. 한국이 부모에게 많이 도움이 된다 하더라도 아직 멀었다. 특히, 자녀가 발달이 늦다면, 거기서부터는 다 부모탓이다. 왜그럴까.
얼마전에 고딩엄빠 촬영팀이 다녀갔다. 급하게 섭외 연락이 와서 좋은 뜻으로 수락하였다. 피디는 다짜고짜 얘기한다. 엄마가 너무 늦장을 부려 아기 발달이 늦은 것 아니냐고. 한국에서 아이를 혼자 키우면 그런일이 벌어진다. 아무리 노력하고 잘해도. 너무 잘하면 독하다 소리를 들어가며, 조금이라도 빈틈이 생기면 그러니 애비 없는 자식이라고 말이다.
엄마는 혼자 돈을 벌면서 아이를 키운다. 어떤 주변의 도움도 없이 키우고 있다. 그런데 20개월에 걷지 못하는 것이 그저 엄마의 탓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양부모가 모두 살아있는 경우에도 발달지연, 발달 장애로 진단받는데 걸리는 시간은 오래걸린다. 3차 병원에서 예약하는데도 오래걸리고, 검사하는데 시간도 만만치 않게 소요된다. 이후에 장애가 있다고 하더라도 인정하지 않기도하고, 진단기반이 아니라도 치료를 시작하는데 여러가지 걸림돌이 있기 때문이다. 나라는 발달 지연이 있을때 검사비를 지원한다. 그렇지만, 그 부모가 얼마나 가난한지 증명해야 도와준다. 가난한 엄빠는 그걸 증명할 시간도, 그걸 증명까지 해가며 내 아이의 문제를 인정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 허들에 걸린 아이들은 발달지연에서 발달 장애가 되고 , 발달장애는 학습장애와 사회 경제적으로 낮은 위치를 찾게 된다. 즉, 가난이 되물림 된다는 뜻이다.
아이를 낳게 하는 것이 다가 아니다. 인공수정을 통해 아이를 낳으면 뭘하나, 아이를 낳아 발달 지연이 있다고 하면 그 집안은 경제적으로 풍비박산이 나는데.
그런 일을 한번이라도 본다면, 세상에 어떤 부부가 아이를 낳을 위험한 결심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지금 전쟁터에 서있는 것 같다. 이 절실함이, 이 절박함이. 아이들에게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부모들은 나에게 실비를 물어보고, 검사 바우처를 물어본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봉사자가 아닌 이상에야, 인건비가 들어가는데, 무턱대고 언제까지 사람들을 그저 도울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지금 너무 행복하다. 그저 무기력하게 바라볼수 없던 아이들에게 뭐라도 해줄 수 있어서. 그게 소아과 의사로서 가장 큰 행복인것 같다. 아이들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것이 현실로 나올 수 있도록 돕는 일. 그 일들이 많은 소아과의사에게서 더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나는 절대 아이들을 이 전쟁터에 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이 성인이 될 20년 후에 우리의 노력을 모른다 해도, 우리의 노력이 세상에서 잊혀진다 해도.
그 아이들이 다른 사람들의 도움없이 살아갈 수 있는 성인이 되어, 가정을 이루고, 행복한 삶을 살수 있다면 그것으로 감사하다.
신이시여, 우리에게 힘을 주소서.
전쟁과 같은 코로나 19에서 살아남은 이 소중한 아이들에게 부디 잘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부디 우리가 그 일에 잘 쓰임받을 수 있도록 힘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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